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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19일 22:3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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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별 지명 보기

구  분

     리

 마 을 지 명

내리

내1리
(내동)

내동왕가마을,삼박골 

내2리
(양진말)

가잣골,뒷메,웃말,샛골,뒷골,뒷매,중태골,서편,진정말,가장골,벌건너,고개넘어
가자골고개,고개재,작골,큰골,다골,벌건너,교작골,학골,장내,위작골,우무동굴
삼바골,국논고랑,신촌,논벌,바깥방죽,새방죽,진주리,진여,가래밥논,둠버더
윗단산,망재산,약수터,당재산,산돌뿌리,십리포,진여뿌리,당산,개앞,두무개
당재고랑

내3리
(도장골)

막꾸지,안마꾸지,바깥마구지,붉은노리,망재골,도장골,행낭골,양지몰,고래장골
순별재,큰순별,작은순별,막구지재

내4리
(버드니)

붉은노리,터골,강낭골,버드니,탑골,태나골,중박골,백력골,절골

내5리
(진두)

진두,도이(두이),도너메,외곁,염벗터,번등,큰방죽,작은방죽,둔두레
큰골(영흥수로),옛주막,거문여,진술목,소드렁뿌리,길마섬,석섬

내6리
(장경리)

한우물동네,가두리동네,막재동네,신노루동네,어엽굴(곡),수해동네,막재(골)
드란막제,막뿌리,장뿌리,메뿌리,회롱골,회롱골재빼기,가두리,신노루재빼기
큰산재,작은신노루,목섬뿌리,굴막촌,한우물,양반재,농바위골,수해(쇄고개)
소뚝,형제바위,왜가리집,신노루

내7리
(가마깨촌)

가마깨촌,은골,네몰(누의머리),방계골강산

외리

외1리
(소장골)

당산,노가리앞소뚝,벗너머,영양골,우대,감투재,선두리갯벌,조우래,우대시,영양골재,깊은골,슁골재,개장골,앙두개,살개,살돌석,괭이뿌리,갑죽도,닻돌,강가뿌리,김가뿌리,소장골

외2리
(업벌)

큰굴,물흘리,뒷전골논,업벌,이금이,금광굴,서리봉,둠베이,어둠골,노적봉,순밀,우럭바위,고지,높은앙뎅이,이핀녀,아래뿌리,선돌,당미,토끼뿌리,채나무꼴산,큰산과마성,삼정우물,넘은골,당너머,유너머,덤바위재,큰재와 작은재,서굴재,무선내,느리재,관서터,감투바위,섬업벌

외3리
(용담이)

용담이,용담이조개더미,용담이앞장술,북골,큰골

내 리
▶ 내리
영흥면 내리는 원래 남양군 영흥면의 지역으로 영흥도 선착장에서 약 4km정도 떨어진 중앙천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깊숙이 들어 낮은 마을이라 하여 '안 마을' 또는 '내리' '내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측변도, 안도, 삼석도, 부당도를 병합하여 '내리'라 하여 부천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리 영흥면 외리는 원래 남양부 영흥면의 지역으로 영흥도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어 '바깥말'도는 '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족도, 관어평, 서염도를 외리라 하여 부천군에 편입시켰다. 그 후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진여
영흥면 내리에 있는 바닷가로 이곳에서 바라보면 인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곳을 한 번 다녀 오려면 산 부리가 하도 길어서 한 번 갔다가 오는데만 한나절이 넘는다. 아무리 장정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허기가 질 정도로 지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허기가 지는 곳이라 하여 '진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큰우물
영흥면 내리에 있는 이 우물은 마을 전체가 식수로 사용했던 자연 우물로 이 마을의 외진곳에 있었다. 그러므로 마을 처녀들은 더운 여름이면 이 우물에서 목욕을 즐기기도 했다고 하여 처녀들이 목욕하던 우물이란 의미로 '처녀물'이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이 처녀 물이란 말이 좋지않다 하여 조선조 중엽 이 우물의 이름을 '큰 우물'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외 리
▶ 달보는 재
영흥면 외리에 있는 이 고개는 큰골에서 용담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 사람들이보름이 되면 이 고개위에서 달맞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고개 위에서 달맞이를 했다는 의미로 '달맞이-고개'또는 '달보는 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국사봉
영흥면 외리의 고개 너머 서남족에 있는 장경이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해발 250m나 되며 고려 말 공민왕이 이성계에 몰락 당한 후 고려의 왕족들이 이 곳 영흥으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이라 하게 되엇다고 한다.

▶ 노적봉
영흥면 외리에 있는 이 산은 산의 높이가 해발 200m로 먼 곳에서 이 산을 바라보게 되면 마치 가을에 수확을 한 수에 볏단을 쌓아 놓은 형상과 같다 하여 이 산을 '노적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2리(업벌)
영흥면 외리에 있는 이 벌은 원래는 고기가 많이 잡히고 물이 맑은 곳이라 하여 어청도라 부르던 지역인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업이 성행하고 큰 배가 오가는 곳이라 하여 '업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농어바위
영흥면 내리에 있는 이 바위는 영흥도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옛날에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획이 부진하여 생계가 매우어려운 지경에 있던 중 어느 날 밤에 한 꿈을 얻게 되었다. 그 가난한 어부는 꿈 속에서 한 바위 위에서 신나게 낚시질을 하다가 그만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어부는 다음날 그 꿈 속에서 낚시질하던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바로 이 바위였다. 그래서 그 어부는 이 바위위에서 낚시질을 했더니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 고기 중에는 특히 농어가 많이 있어 갑자기 어렵던 생활이 펴지게 되고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농어가 많이 잡히는 바위라하여 이 바위를 '농어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쿵쿵바위
영흥면 외리에 있는 이 바위는 이 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돌아와 이 바위 위에서 손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바위 위에서 밭을 구르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쿵쿵 소리가 자구만 났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내려 왔다가 또 올라가서 굴러 보기를 여러 차례 해보았다. 그래서 여전히 구르기만 하면 속이 빈 것처럼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쿵쿵바위'라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에는 많은 풍황에 의해 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 용마바위
영흥면 외리의 무선내 못 남족의 개체 북쪽에 있는 이 바위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에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한 아이가 태어낫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날개 달린 사람은 훗날 역적이 될 것이라하여 이 아이를 죽이려 했다. 그랬더니 그만 이 아이는 자기를죽이려는 것을 알고 말을 타고 이 바위를 한바퀴 돌더니 바위를 넘어 어디론지 사라져 머리고 말았다. 그 후 바위 위에는 말일 밝고 넘은 말 발자국으로 흔적으로 남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마바위'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뚱뚱바위 또는 마귀바위
영흥면 외리에 있는 이 바위는 바깥말 서쪽에 있는 노가리에 있으며 그 모양이 크고 뚱뚱하여 '뚱뚱바위'라 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거워 마귀할멈이 갖다 놓았다 하여 '마귀바위'라 하기도 한다

▶ 부도
영흥면 서남방 18km해상에 있는 면적 0.020km에 달하는 아주 작은 섬으로 해안선의 길이가 1km정도이며 최고 높은 지역이 해발 73km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섬에는 등대가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 운항하는 모든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며 관리자들만이 유일한 이 곳의 주민들이다. 식수가 나지 않아 빗물을 정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섬 모양이 한 마리의 오리가 바다에 떠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부도'라 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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