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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16일 14:42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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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고구려,신라가 한강유역을장악하는데 따라 소속이 바뀌었다.고려 현종9년(1018) 수주(수원)의 속군이 되었다가 인주(인천)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도호부에 속하였고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옹진군이 인천광역시로 통합됨에 따라 인천으로 편입되었다.

영흥도의 명칭은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영흥도에 피신 정착하면서 살고 있는 동안에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산 국사봉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靈興島)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영흥도의 명칭은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영흥도에 피신 정착하면서 살고 있는 동안에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산 국사봉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靈興島)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 외 전해오는 전설에 의한 지명 유래로는 옛날 중국 상인이 우리나라에 오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표류하던 배는 그만 두례의 암포에 부딪쳐 배밑이 파손되어 침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마침 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배밑창으로 기어 들어가 파손된 구멍을 막아주어 배가 파손되지 않고 간신히 육지로 댈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육지에 무사히 도착한 배는 배밑 구멍을 수선하여 목표지였던 인천의 제물포항에 돌아갈 수 가 있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섬에서 신령이 도와서 이 배가 무사히 뭍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고 여기어 이 섬을 ‘영흥도’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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