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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28일 22:38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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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속죄의 방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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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차가운 쇠조각. 솔직히 그걸 딱 잡는 순간 열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쇠조각이라면 열쇠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꺼냈을 때 내가 얼마나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는 지 알 수 있었다.<br><br>"이건……."<br><br>어찌보면 정말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왜 이런 물건이 나올 것일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구데기처럼 뇌혈관을 기어다녔다.<br><br>"뭔데? 뭐 있어?"<br><br>어깨 너머로 소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쉽게 고개를 돌려 들고 있는 그것을 쉽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결국 소라가 내 곁에 올 때까지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br><br>"너 왜 그래? 뭔데 그래?"<br><br>그렇게 말하며 소라의 시선은 내 등에서 손으로 시선을 옮겨갔다.<br><br>"어……."<br><br>그녀도 순간 할 말을 잃은 모양인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br><br>"이거……. 칼이잖아?"<br><br>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메스. 수술용 칼이었다. 메스의 날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있는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녀도 칼의 예리함을 눈치챘는 지 무의식적으로 나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br>곧 이어 뒤의 두 여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왔기에 천천히 몸을 돌려 그것을 보여주었다.<br><br>"이것 봐."<br>"어?"<br>"칼?"<br><br>두 여자의 반응도 긍정적이지 못 했다.<br>칼이란 도구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요리, 의료 등……. 하지만 결국은 무언가를 잘라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 지금까지 도구들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우리 넷은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br><br>"소민 누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br><br>긴 침묵을 끝낸 것은 나였다. 이 얼음처럼 차가운 도구를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쏘우에서 봤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대충 서랍 위에 올려놓고 뼈대만 남은 침대 위에 앉았다.<br><br>"모두 같은 생각이겠지만 좋은 생각은 안 떠오르네……."<br><br>소민 누나의 한마디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침묵이라는 무거운 공기를 마셔야만 했다.<br>솔직히 힌트가 어려워서 풀 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 칼을 딱 보는 순간 무엇을 해야만 하는 지 선택지가 딱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그 선택지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내심 다른 선택지가 있기를 바랬을 정도니까.<br>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잘라내는 것……. 혹은 가르는 일이다.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칼의 용도는 점차 좁혀져 결국 한 가지가 남았다.<br><br>"이걸로 철창을 자르는 건 무리겠죠?"<br>"문을 따는 것도 무리일 테고."<br><br>물끄러미 문에 시선이 갔지만 메스로 딸 수 있는 그런 조잡한 문고리가 아니었다.<br><br>"애초에 철창이나 문을 따는 용도로 주는 칼이었다면 식칼이나 과도 같은 걸 줬겠지. 쉽게 부러지는 메스를 주진 않았을 거야."<br><br>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말하는 소민 누나가 괜히 야속하게만 느껴졌다.<br><br>"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고요."<br><br>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는 투로 말하고 말았다.<br><br>"그럼 이 칼의 용도는 뭐야?"<br><br>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지 소라가 당당하게 물어왔다. 그녀의 저 철없는 태도는 지금까지 웃으면서 지켜봤지만 지금만큼은 짜증이 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br>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도희 역시 소민 누나와 나의 반응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인지 가만히 입 다물고 있었다.<br>방 안에는 소라의 목소리만이 계속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말에 대꾸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국 이 짓을 해야하는 건 '남자'인 나의 몫이 될 테니까.<br><br>"뭐야? 다들 아는 눈친데? 나한테도 좀 가르쳐 줘."<br><br>소라의 철없는 반응에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굳이 어린 여자 아이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br><br>"너 쏘우라는 영화 본 적 있어?"<br>"뭐, TV에 자주 하니까."<br>"대한아."<br><br>소민 누나가 말리는 투로 말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br><br>"쏘우에서도 우리처럼 한 여자에게 칼을 쥐어준 장면이 있었어. 그 여자는 그 칼로 무엇을 했을까?"<br>"글쎄……. 그런 장면까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br>"대한아."<br><br>수민 누나가 다시금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난 멈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도 아직 철없는 척 하는 소라가 너무 짜증이 났다.<br><br>"사람 배때기를 갈랐다고."<br>"대한아!!"<br>"칼로!! 사람의 내장을 꺼내고 가르고 잘라서!!"<br>"그만하라고!!"<br>"우리도 똑같이 해야한단 말이야!! 씨발!! 이 칼로 문을 딸 꺼야!? 아님 철창을 자르기라도 할 꺼냔 말이야!!"<br><br>짝!!<br><br>순간 세상이 빠르게 돌아갔다. 몇 초 정도 지나고 나서야 내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음을 알았다.<br><br>"미, 미안……."<br>"아니에요……. 죄송합니다."<br><br>왼쪽 뺨이 후끈거리면서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br><br>"저, 정말이야? 그건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br><br>다시 한 번 속에서 욱하고 올라왔지만 뺨에 느껴지는 통증이 그것을 막았다.<br><br>"방금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이걸로 철창을 자를 거야? 아니면 문을 딸 거야?"<br>"부, 분명! 뭔가 다를 용도도 있을 거야! 굳이 그런 곳에 사용하지 않아도……."<br><br>소라의 애처로운 발버둥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칼의 용도를……. 저 구석에 누워있는 시체가 왜 있는 지를…….<br>어째서 지금까지 우리를 즐기는 기분으로 대해줬던 걸까. 납치범은. 왜 이제와서 이런 짓을 시키는 걸까.<br><br>"욱!"<br><br>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도희가 갑자기 헛구역을 했다. 소민 누나는 그런 도희를 창가로 데려가 찬 공기를 마시게 했다. 소라는 그런 상황을 넋놓고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소라의 수다스럽게 나불대던 주둥이가 그리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병실을 가득 매웠다.<br>인간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생물이다. 그 상상으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참으로 재미있는 생물이다. 고장이 나서 전혀 작동하지 않은 냉동실에서 얼어죽은 남자, 독이 없는 뱀인데 독이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중독 되어서 죽는 여자…….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상상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다.<br>도희가 헛구역질을 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한 상상이었을 것이 틀림없다.<br><br>'결국 해야하는 건 나인데……. 여자들이 할 리가 없잖아. 씨발…….'<br><br>이 순간만큼은 여자이고 싶다고 강렬하게 바랬다. </p><p>&nbsp;</p><p>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의대를 다녀온 것도 아니고, 수술을 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남자인데. 실제 사람의 피를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거기에 대한 이상작용인지 이상하리만큼 공포영화에는 관심을 가졌다. )<br>하지만 결국 이 일을 하게 될 사람은 나였다. 그녀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빨리 해주길 바라는 눈빛만 하고 있을 뿐. 시간이 흐를수록 배고픔이 공포로 다가올 테니까.<br><br>'씨발…….'<br><br>어쩌다가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속이 울렁거린다. 저 얼음처럼 차가운 도구를 쥘 수조차 없다.<br>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얌전히 있던 그녀들이 하나 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br><br>"배고프네." <br><br>처음 시작은 소민 누나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좁은 방이었기 때문에 전부에게 전해졌다. 그녀도 그걸 노리고 한 짓일 거다. 머리가 좋은 여자인데 그런 걸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으니까. 괜히 마음만 더 조급해졌지만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죽은 시체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우찬 씨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니, 우찬 씨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시체에도 손을 댈 수 없다.<br>그렇게 또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br>이번에는 도희였다. 그녀는 아무런 행동없이 그저 조용히 하늘에 내리는 비를 모았다. 작은 손으로 빗물을 받아 마셨지만 허기가 안 차는 지 몇 번씩이나 하늘의 비를 받아 자신의 입에 털어넣었다.<br>그런데 왜일까 그녀의 행동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빨리 칼을 쥐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br>그렇게 또 몇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빨리 해야겠다가 아니라 꼭 해야하나? 하필 왜 내가 해야하지? 란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br><br>"저기 대한아."<br><br>6시간이나 흐른 뒤에서야 소민 누나는 나를 불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지인지 짐작하고 있던 나는 서둘러 그녀가 말할 타이밍을 낚아챘다.<br><br>"우리 제비뽑기하자."<br><br>순간 그녀들의 얼굴에는 의아함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곧 한 사람의 얼굴에 작은 구김이 생겼다.<br><br>"지금 상황에 무슨……."<br><br>소민 누나는 상황을 바꾸려고 발버둥쳤지만 3시간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터라 그런 그녀의 화제전환을 쉽게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br><br>"그러니까 시체의 배를 가를 사람을 고르자고."<br><br>나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퍼지자 그녀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정말 장관이었다. 모든 걸 맡기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통쾌한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지로 절제했다.<br><br>"그, 그건……."<br><br>부랴부랴 소라가 입을 열었지만……. 말했지 않은가?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고. 저런 짓거리를 누가 하고 싶겠는가? 난 이미 3시간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계획하고 있었다. 감정을 존중해주느라 너무 시간을 넉넉하게 준 그녀들의 판단 미스였다.<br><br>"설마 이런 상황에서 남녀 성차별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윤.소.라 양?"<br><br>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이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몸을 휘벼파는 상상이라도 한 것일까.<br><br>"대한아, 아무리 네 말이 맞다고는 하지만……."<br>"미리 준비해뒀어요. 제 머리카락 4가락을 뽑았거든요. 혹시 의심 되시면 직접 확인한 뒤에 뽑으면 됩니다."<br><br>이번에도 소민 누나가 말할 타이밍을 빼았았다. 그녀들의 표정은 점점 변해갔다. 갑자기 현실로 다가온 시체 해부에 대한 공포감이 대뇌를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다.<br>그제야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인지 도희도 끼어들었다. 내심 그녀는 가만히 있기를 바랬지만 그녀도 사람은 사람인 모양이다.<br><br>"대한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남자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br><br>정론이다. 하지만 나 역시 도저히 사람의 내장을 마구 휘집어팔 자신은 없었다. 아니, 절대로 할 수 없다.<br><br>"나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걸? 아무리 남자라도 할 수 없는 게 있는 거야."<br><br>그렇게 말하자 세 명의 여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인 사람처럼 넋놓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남자를 시키자고 합의를 보고 억지로 다수결로 밀어붙였다면 나는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미 남녀차별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탓에 그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힘으로 억지로 시키려고 해도 다음 방에서 힌트를 풀 사람이 없으니 억지로 시킬 수도 없다. 3대 1이라는 장점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억지로 이 방을 탈출시켜서 다음 방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거다.<br>생각해봐라. 허기를 못 이겨 결국 나에게 강제적으로 우찬 씨의 배를 가르게 했다면? 다음 방에서 식량이 있을 지 없을 지 혹은 더 심각한 상황일 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br>결국 모두가 협력해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 즉, 그녀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룰을 따를 수 밖에 없는 형국이 된 거다.<br><br>"자, 그럼 뽑기하자. 의심되면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해도 좋아."<br><br>100% 해야하는 상황에서 25%로 줄인 것만으로도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이득이다. 만약 운 없게 내가 뽑힌다면…….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도록 하자.<br><br>"대, 대한아……."<br>"왜?"<br>"제, 제발…….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br><br>지금까지 당차던 소라가 말을 더듬으며 비 맞은 새끼고양이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남자라고 무조건 양보하고 피해받는 건 현실에서 족하다. 여기는 현실과 완전 동떨어진 세상. 그런 상식 따위 통할 리가 없고, 따를 생각도 없다.<br>슬그머니 구석에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서로의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들이댔다.<br><br>"왜 그렇게 생각해? 혹시 다음 방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가르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너 혼자."<br>"웁!"<br><br>본의 아니게 악역을 하게 되었지만……. 아니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인데 악역이라니.<br>소라는 지금까지 봐왔던 헛구역질이 아닌 제대로 된 위액을 입 밖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창 밖으로 토약질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창 때문인지 위액은 제대로 창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 했다. 덕분에 순식간에 방 안에는 역한 냄새로 가득 찼다.<br>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가증서럽게 느껴졌다. 자기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는 듯 당연하다는 듯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저런 태도가.<br>그 때문일까 결국 작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nbsp;&nbsp; <!--/EAP_CONTENT--></p><div class="document_popup_menu"><a href="#popup_menu_area" class="document_29412711" onclick="return 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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